2010. 2. 4. 01:29 카니발인생
황지우 <뼈아픈 후회>
참고서들을 뒤적거리던
어느 날 오후
분주했던 손놀림도
무심히 내쉬던 숨도
마구 뒤엉켜 흘러가던 마음도
멈춰버리게 했던 "시"
나를 가장 아프게 하는
그래서
내가 가장 사랑하는 "시"
올해도
다이어리 첫 페이지에
적어둔다.
황지우, <뼈아픈 후회>
슬프다
내가 사랑했던 자리마다
모두 폐허다.
완전히 망가지면서
완전히 망가뜨려놓고 가는 것 그 징표 없이는
진실로 사랑했다 말할 수 없는 건지
나에게 왔던 사람들,
어딘가 몇 군데는 부서진 채
모두 떠났다.
내 가슴속엔 언제나 부우옇게 이동하는 사막신전
바람의 기둥이 세운 내실에까지 모래가 몰려와 있고
뿌리째 굴러가고 있던 갈퀴나무 그리고
말라가는 죽은 짐승 귀에 모래 서걱거린다.
어떤 연애로도 어떤 광기로도
이 무시무시한 곳에까지 함께 들어오지는
못했다, 내 꿈틀거리는 사막이,
끝내 자아를 버리지 못하는 그 고열의
신상이 벌겋게 달아올라 신음했으므로
내 사랑의 자리는 모두 폐허가 되어 있다.
아무도 사랑해 본 적이 없다는 거
언제 다시 올지 모를 이 세상을 지나가면서
내 뼈아픈 후회는 바로 그거다.
내 누구를 위해 그 누구를
한번도 사랑하지 않았다는 거
젊은 시절, 내가 자청한 고난도
그 누구를 위한 헌신은 아니었다.
나를 위한 헌신, 한낱 도덕이 시킨 경쟁심
그것도 파워랄까, 그것마저 없는 자에겐
희생은 또 얼마나 화려한 것이었겠는가
그러므로 나는 아무도 사랑하지 않았다.
그 누구고 걸어 들어온 적 없는 나의 폐허
다만 죽은 짐승 귀에 모래의 말을 넣어주는 바람이
떠돌다 지나갈 뿐
나는 이제 아무도 기다리지 않는다.
그 누구도 나를 믿지 않으며
기대하지 않는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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